복숭아, 뭉게구름, 수평선, 러브레터, 청춘을 노래하는 밴드. 그것들은 전부 네모난 SNS 화면 속의 여름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여름은 초파리, 끈적한 손바닥, 덜 마른 빨래 냄새, 하루 만에 상해 버리는 냉장고 속 반찬이라고. 나는 미지근한 맥주같이 지지부진한 여름을 빨리 다 마셔 버리고 다음 캔을 따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계절의 끝을 기다리곤 했다. 구슬땀을 흘리며 청량함을 뽐내는 페스티벌의 기타리스트는 유튜브 영상 속에나 존재할 뿐, 기본적으로 땀 흘리는 인간은 후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나 청량할 수 없음을 N년째 서울 2호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섭씨 16도에서 24도 사이의 날씨 빼곤 전부 싫어하던 바질 화분 같은 나였지만 최근엔 약간의 심경 변화가 생겼다. 아마 지구온난화 탓일 거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겪은 계절 풍경이 할머니가 되어서도 똑같을 거란 보장이 없다는 깨달음은, 두려움과 충격을 넘어 눈앞에 닥친 모든 계절을 일단 100%로 즐겨 두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이어졌다. 봄이 지나고 기온이 5도씩 오를 때마다 어깨도 5도씩 처지던 내가 여름 바다에 몸을 던지고, 복숭아를 한 박스나 사서 깎아 먹고, 매일 출근길에 밴드 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유는 그뿐이었다.
락 페스티벌까지는 좀 부담이라 대신 즐겨 듣던 밴드의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여름에 걸맞게 심장과 고막에 탄산수를 끼얹은 듯 시원한 라이브 연주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출퇴근하며 노래만 반복재생 했을 뿐 얼굴도 나이도 찾아볼 생각을 안 했던 나의 게으름 탓일까. 그들이 아주 유명하진 않지만 수려한 외모를 가진 아이돌 밴드였단 사실과,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팬들 중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손을 주머니에 어색하게 찔러 넣은 채 쿨한 척을 하는 와중에 연주는 속절없이 시작되었다.
공연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등 뒤로 땀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손을 치켜들고 방방 뛰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밴드 멤버들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와 무한히 발사되는 손하트를 보다가 뜻밖에도 잠시 슬퍼지고 말았다. 한여름 초록빛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면 언제나 조금은 안타깝다. 그 어떤 화려한 조명도 반드시 꺼진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워서. 멋지고 재능 있는 사람들은 오래오래 해 먹었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유구한 염원이다. 무대 위 그들의 관절도 성대도 오래오래 건강하길... 세배라도 받은 것처럼 덕담을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내 옆의 중학생에게 눈길이 닿았다.
벅찬 감정을 주체 못 하고 한 손으로 입을 막은 그녀의 눈이 무대가 아닌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었음에도 '하여간 스마트폰 중독...'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촬영 중인 화면 속 금발의 기타리스트를 향한 순도 100%의 애정이 쿵쿵대는 음악을 뚫고 내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구슬땀을 흘리는 청량한 기타리스트, 그리고 사랑에 빠진 소녀.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지만 그 순간 나는 다른 이가 주인공인 영화에 잠깐 출연한 구경꾼이 된 기분이었다. 조금 전의 슬픔은 눈 녹듯 사라졌다. 메인보컬과 기타리스트의 수익 분배 따위를 궁금해하던 머릿속도 덩달아 반성하며 조용해졌다. 오래오래 기억될 누군가의 청춘의 한 장을 목격하고 여름이 약간 더 좋아졌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