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요즘 밥값이 진짜 비싸. 콩국수가 만 육천 원이나 하더라.”
엄마가 콩물을 들고 집으로 찾아온 건 그 얘기를 한 다음날의 일이다. 코카콜라 로고가 적힌 출처 모를 보냉백에서는 콩국수에 고명으로 올릴 오이, 야채도 못 먹고 살까 봐 가져왔다는 새빨간 피망, 갓 담근 오이소박이가 줄줄이 딸려 나왔다.
“사 먹는 것보다 낫지?”
“응. 나는 이제 밖에서 콩국수 못 사 먹어.”
그 말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종류의 칭찬이었다.
2.
하지만 무릇 글쓰기란 솔직해야 하는 법이라 용기 내어 고백한다. 사실 나는 회사 근처에 있는 콩국수 맛집 <진주회관>을 엄마 콩국수 못지않게 사랑한다. 만 육천 원씩이나 하는 콩국수도 바로 그 가게 얘기다. 퇴근 후에 들러 그릇을 싹싹 비운 게 벌써 올여름에만 네 번째다. 울적하고 피곤했던 초여름의 월요일에 충동적으로 가게에 들어선 게 루틴의 시작이었다. 매일의 기분 관리도 재산이라는,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떠올리며 극악무도한 가격은 애써 모른 척했다. 콩국수는 계절 메뉴니까 길어야 몇 달밖에 안 팔고, 회사 앞에 마침 이런 맛집이 있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고, 나는 기분도 안 좋으니까. 오늘 즐길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을 찾아 먹어야 해. 어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야. 합리화하며 신중하게 콩물을 들이켰다. 다 먹은 뒤에는 놀랍도록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 운동까지 마친 뒤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으로 잠들며 생각했다. 찾았다! 올여름에 날 살릴 존재.
3.
그 집의 콩국수 사진을 본 엄마는 ‘인정한다’라는 느낌으로, 입꼬리를 약간 내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론 거기서 사 먹으라고 했다. 안 그래도 더위 먹기 직전이라 집에서 콩 불려서 갈기 귀찮았다면서. 엄마, 그래도 엄마 콩국수가 최고야. 진주회관은 2등. 그렇게 말하며 엄마의 표정을 살폈는데, 귀찮다는 엄마의 말은 진심인 것 같긴 했다.
4.
요 며칠은 기력이 너무나도 없었다. 퇴근 후에는 태양에 얻어맞아 땀에 전 몸으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기 일쑤였다. 입맛도 다 사라졌지만 밥은 먹어야지… 냉장고를 열자 지난번 칵테일을 만들고 남은 레몬 한 개가 눈에 띄었다. 더위 먹은 사람한테는 아무래도 비타민이 필요하겠지. 일차원적인 생각을 하며 좋아하는 유리잔을 꺼낸 뒤 탄산수와 얼음을 가득 채우고 레몬 한 조각을 띄웠다. 잔을 기울일 때마다 찰랑이는 얼음과 탄산 기포 소리, 상큼한 레몬 향이 얼굴을 때렸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그래, 너도 날 살리러 왔구나.
5.
올여름에 나를 살린 건 콩국수와 레몬이었다(생맥주는 굳이 언급하기도 입 아파서 생략했다). 작년 여름에는 무엇이 날 살렸더라? 아마 복숭아, 두피 쿨링 샴푸, 그리고 수영장이었던 것 같다. 내년에는 또 다른 사소한 것들이 나를 살릴 것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적당히 기분 좋게 살아남는 중이다. 좋아할 일이 많지도 않은 세상인 거 알지만, 그래도 인상 잔뜩 쓰고 땅만 보고 걷기는 죽기보다 싫다.